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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 수다, 가족을 리셋하다

지난 9월 16일, ‘대청마루 수다, 가족을 리셋하다’라는 제목의 특별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정상가족’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와 삶의 방식을 지원하는 제도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는데요. 토론회에는 박진경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 소설 《5년 후》의 정여랑 작가, 《할매의 탄생》의 최현숙 작가, 비혼여성공동체 emif(에미프) 강한별·하현지 공동대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의 박주연 기자가 참여했습니다.


안국동의 작은 한옥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수다회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작가, 기자, 현장 활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토론 참여자들은 1인가구, 비혼 증가 등 증가한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공유하고, 이러한 새로운 관계들의 등장에 따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돌봄, 의료, 재산, 주거 등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쳤습니다.

박진경 사무처장은 인사말을 통해 “소설, 공동체,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리고 여성, 소수자, 돌봄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지혜를 모으면 지금까지 정부가 생각하지 못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토론회를 마련했다. 여러분이 나눠주신 의견을 정책과 접목하여 미래 사회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자 노력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박진경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이 제도적 상상력이 의미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여성비혼공동체 에미프의 하현지·강한별 대표는 자신들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미래 사회에 필요한 제도를 언급했습니다. 강한별 대표는 “에미프는 비혼 여성들의 삶을 연결해 연대하기 위해 마련한 커뮤니티이며, 저와 하현지 대표는 의식주를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하고, 공동체로 모여 사는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여성비혼공동체 에미프의 강한별 공동대표는 공동체로 모여 사는 구성원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 마련 필요성을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재산, 돌봄 등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는 우리나라에 없는 것 같다. 현재 정부가 ‘생활동반자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생활동반자법은 반드시 나와 타인 한 명이 ‘일대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여러 명이 모여 사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경우는 일대일의 관계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이 생겨도 보호받기 어렵다. 일대일의 관계만을 전제하지 않는, 다양한 ‘개인’의 삶을 보호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현숙 작가는 기존의 ‘정상가족’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돌봄, 의료, 주거 등의 법과 제도에서 여전히 혈연 또는 혼인 관계 등으로 구성된 ‘가족’을 전제에 두고 있다.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기존 제도를 개선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살펴보면 1인가구나 동거 등 정상가족의 틀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사람들을 기존의 제도에 끼워주는 형식에 불과하다. ‘가족’을 여전히 정상으로 보는 한 미래 사회에 필요한 제도를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인구와 가족의 변화에 대응하려면 ‘가족’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체제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개인이 어떤 삶을 선택하든 사회 구성원의 한 명으로써 법적,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국가와 시민이 일대일로 관계를 갖고, 국가가 모든 개인을 지원할 수 있도록 사회 분배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하며 “사회 분배 체제를 바꾸는 근본적인 체제 변혁 없이는 인구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인구와 가족의 변화에 대응하려면 ‘가족’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체제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최현숙 작가

사회가 가족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는 최현숙 작가의 말에 하현지 대표도 동의했습니다. 하현지 대표는 “개인이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든 개인의 삶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 비혼공동체로 세 명이 모여 사는 사람들은 주택청약을 낼 수도 없고, 개인 대출도 불가능하다. 공동체의 삶을 선택한 개인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개인이 선택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새로운 법과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에미프 하현지 공동대표.

박진경 사무처장은 최현숙 작가의 의견에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우리나라 사회 체제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바꾸려고 노력중이다. 최근 가족 단위가 아닌 소득단위로 계산하여 개인단위로 지원한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처럼 말이다. 작은 진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4년째 몸담고 있는 박주연 기자는 ‘가족을 리셋’한다고 했을 때 서로 돌봄을 주고받는 성인 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새로운 관계가 사회에 확장되는 가운데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교육도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일다의 박주연 기자는 “서로 돌봄을 주고받는 성인 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여랑 작가는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짚었습니다. 정여랑 작가는 ‘결혼갱신제’가 도입되고 달라진 대한민국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5년 후》의 저자입니다. 그는 이 소설을 쓴 이유에 대해 “저출생을 해결하려면 돌봄 노동, 교육 등의 분야에서 국가가 어떤 뒷받침이 필요한가 말하고 싶었고, 특히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하나로 정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이 자신의 보호자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하여 개인과 개인이 지정한 돌봄 관계자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여랑 작가는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한 저평가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두 시간으로 예정된 시간이 모자라게 느껴질 정도로 참가자들의 토론은 열기를 띠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토론자들은 우리나라 정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했습니다.

최현숙 작가는 “정책 개선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하고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 방향은 ‘분배’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개인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분배의 방향으로 사회경제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이상 저출산이나 새로운 가족 관련 제도 등을 만든다 하여도 알맹이가 없는 제도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더하여 정여랑 작가는 “어릴 때부터 가족 다양성, 다양한 삶에 관해 토론하고 배울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양한 관계, 삶의 방식, 이와 관련한 사회 제도 등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교육환경만 아이들에게 제공해주어도 미래 사회에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이 수다회처럼 다양한 삶과 필요한 제도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더 많이 마련되길 바란다.”라고 제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진경 사무처장은 “오늘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의미 있는 자리였다. 다양한 개인의 삶의 방식과 제도의 필요에 대해 앞으로도 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이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토론을 마무리지었습니다.